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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투리키오

핀투리키오
핀투리키오의 자화상, 1501년, 발리오니 예배당
핀투리키오의 자화상, 1501년, 발리오니 예배당
신상정보
출생 1454년
교황령, 페루자
사망 1513년
시에나 공화국, 시에나
직업 화가
성별 남성
주요 작품
영향

핀투리키오(Pinturicchio 또는 Pintoricchio, 1454년~1513년)는 베네토 디 비아조(Benetto di Biagio), 소르디키오(Sordicchio)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이다. 본명은 베르나르디노 디 베토(Bernardino di Betto)이다. 그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작은 화가”라는 뜻의 핀투리키오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 별칭을 15세기와 16세기에 제작한 일부 작품의 서명에 사용했다.

생애

초기 생애

핀투리키오는 페루자에서 베네데토(Benedetto) 또는 베토 디 비아조(Betto di Biagi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경력 초기에 본피길리 또는 피오렌초 디 로렌초 같은 덜 알려진 페루자 출신 화가들에게서 배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르조 바사리의 기록에 따르면, 핀투리키오는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유급 조수였다.

페루자 르네상스 학파의 작품들은 서로 매우 유사하여 페루지노, 핀투리키오, 로 스파냐, 젊은 라파엘로의 그림들이 종종 서로 혼동되기도 한다. 대형 프레스코화 제작에서는 제자와 조수들의 역할이 컸는데, 대가의 소묘를 전면 크기의 카툰으로 확대하거나, 벽에 옮겨 그리거나, 배경이나 부속 요소를 채색하는 일을 맡았다.

시스티나 경당에 있던 《성모 승천》 프레스코화 밑그림, 1481년, 후에 철거되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으로 대체됨

그의 로마에서의 임무, 즉 시스티나 경당 장식은 당시의 저명한 예술가들,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피에트로 바누치, 루카 시뇨렐리 등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시스티나 경당에서는 핀투리키오가 어느 정도 페루지노와 협력했다고 여겨진다.[1] 핀투리키오의 프레스코화 《성모 승천》은 1481년에 시스티나 경당 제대 벽에 그려졌으나, 1535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위해 철거되었다.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서의 작업

시스티나 경당에서 페루지노의 프레스코화를 도운 뒤, 핀투리키오는 델라 로베레 가문의 여러 구성원들에게 고용되어 델라 로베레궁의 ‘반신(半神)들의 천장화’와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의 여러 예배당을 장식했다. 그는 1484년 무렵부터 1492년까지, 혹은 그 이전부터 이곳에서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비평가 에블린 마치 필립스는 그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만약 이 성당이 원래의 장식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었다면, 이탈리아에서 핀투리키오 예술의 가장 훌륭한 기념물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상당 부분이 남아 있지만, 많은 것이 사라졌다.”[2]

그의 가장 초기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목자들의 경배’를 주제로 한 제대화로, 도메니코 델라 로베레 추기경이 세운 델라 로베레 예배당에 있다. 돔 아래 반원형 벽에는 성 제롬의 생애에서 따온 작은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황금빛 배경 위에 그려진 다채로운 그로테스크 벽 장식은 도무스 아우레아에 있는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로마에서 그 종류 가운데 가장 초기이자 최고 수준의 사례에 속한다.

로렌초 치보 데 마리 추기경이 16세기 초에 세운 치보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는 1682년 알데라노 치보 추기경에 의해 예배당이 다시 지어지면서 파괴되었다. 그러나 핀투리키오의 성모자 프레스코화는 벽에서 분리되어 1687년 마사로 옮겨졌고, 그 조각은 마사 대성당의 공작 예배당 제대화로 재사용되었다.[3]

남쪽의 세 번째 예배당은 교황 식스토 4세의 조카이자 레카나티 주교였던 지롤라모 바소 델라 로베레의 것이다. 바소 델라 로베레 예배당에는 ‘네 성인 사이에 군림하는 성모’라는 뛰어난 제대화와, 동쪽 벽에는 장엄하게 구성된 《성모 승천》 프레스코화가 있다. 돔과 그 반원형 벽에는 성모의 생애를 주제로 한 작은 그림들이 우아한 아라베스크 무늬에 둘러싸여 있고, 하부는 성인들의 생애, 환영적인 의자, 그리고 루카 시뇨렐리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기품 있고 힘차게 묘사된 전신의 여성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코스타 예배당에서는 핀투리키오 또는 그의 조수가 돔 반원형 벽에 교회의 4대 교부를 그렸다. 대부분의 프레스코화는 습기로 인해 심각하게 손상되었으나, 복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성당에서 핀투리키오가 남긴 마지막 그림들은 합창석 뒤 천장에 있으며, 주변 환경에 맞게 능숙하게 배열된 장식적 프레스코화이다. 중앙에는 ‘성모 대관식’이 팔각형 패널 안에 있고, 그 주위에는 4대 복음사가의 원형 초상이 배치되어 있다. 그 사이 공간은 4명의 시빌라의 반누드 인물상으로 채워져 있다. 각 펜던티브에는 움푹 들어간 캐노피 아래에 앉아 있는 교부들의 모습이 있다. 그림들을 구분하는 띠에는 금빛 바탕 위에 정교한 아라베스크가 그려져 있으며, 전체는 넓고 힘 있는 붓질로 처리되어 아래에서 멀리 보았을 때 특히 강한 인상을 준다.

바티칸 도서관의 작품

보르자 아파트의 첫 번째 방에 있는 무릎을 꿇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묘사한 프레스코화

1492년, 핀투리키오는 오르비에토 대성당으로 초청되었으나, 동시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보르자)에 의해 바티칸 사도궁보르자 아파트의 여섯 개 방을 장식하도록 위촉되었다. 이 방들은 현재 바티칸 도서관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다섯 개 방에는 여전히 핀투리키오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그는 1494년경까지 제자들과 함께 이 방에서 작업했으며, 중간에 중단되기도 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사망한 뒤에야 핀투리키오는 로마를 떠나 움브리아로 돌아갔고, 로마의 나머지 작업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에게 맡겨졌다.[4]

《성 베르나르디노의 장례식》, 1484~1486년경, 부팔리니 예배당

로마에 남아 있는 그의 중요한 프레스코화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작품은 《성 베르나르디노의 장례식》으로, 산타 마리아 인 아라코엘리 성당 남서쪽 구역의 부팔리니 예배당에 있다. 이 작품은 1484~1486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대 벽에는 두 성인 사이에 있는 베르나르디노 다 시에나의 장엄한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천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윗부분에는 천사 음악가들에게 둘러싸인 만도를라 속의 그리스도상이 있다. 왼쪽 벽에는 성 베르나르디노의 시신에서 일어난 기적을 그린 대형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후원자 부팔리니 가문의 인물들이 초상으로 포함되어 있다.

세 여성으로 이루어진 한 그룹 가운데 아기를 젖 먹이는 중앙 인물은 라파엘로 후기 양식의 우아함을 떠올리게 한다. 성인의 시신 주변 주 그룹의 구도는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에 있는 조토의 《성 프란치스코의 장례》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돔에는 네 복음사가의 고귀한 모습이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루카 시뇨렐리의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이 예배당의 다른 프레스코화들과 마찬가지로 핀투리키오의 손길일 가능성이 더 크다.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체칠리아 성당 성가대실 천장에는 복음사가들에게 둘러싸인 전능하신 하느님의 모습이 있다. 1496년 오르비에토 방문 중, 그는 대성당 성가대석에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두 인물을 그렸는데, 보수 50두캇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이 그림은 다른 오르비에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파괴되었다. 움브리아에서 그의 대표작은 스펠로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발리오니 예배당이다.

그의 패널화 가운데 중요한 작품으로는 페루자의 산타 마리아 데 포시 제대화(1496–1498년 제작)가 있는데, 현재는 시립 미술관에 옮겨져 있다. 이 작품은 성모가 성인들 사이에 군림한 모습으로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제대 양쪽 날개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성 제롬의 입상이, 프레델라에는 수태고지와 복음사가들의 미니어처 그림이 있다. 비슷한 시기 제작된 또 다른 뛰어난 제대화는 산 세베리노 대성당에 있는데, 성모가 무릎 꿇은 봉헌자를 내려다보는 구도를 하고 있다. 천사들의 얼굴과 표정은 로렌초 디 크레디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바티칸 미술관에는 핀투리키오의 가장 큰 패널화 ‘성모 대관식’이 소장되어 있는데, 아래에는 사도들과 성인들이 있다. 무릎 꿇은 성인들 사이에는 정교하게 그려진 초상화들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발치에서 왕관을 받는 성모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하부 집단은 매우 세련되고 우아한 배열로 구성되었다.

1504년, 핀투리키오는 시에나 대성당의 모자이크 바닥 패널 《포르투나의 이야기》, 또는 《덕의 언덕》을 설계했다. 이 작품은 1506년 파올로 마누치에 의해 제작되었다. 패널 상단에는 지혜의 상징적 형상이 소크라테스에게 승리의 야자수를 건네는 모습이 있다.

핀투리키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주요 공공 미술관으로는 옥스퍼드 대학교애슈몰린 박물관,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도서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런던 코톨드 미술관, 덴버 미술관, 케임브리지 대학교피츠윌리엄 박물관, 호놀룰루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로마 팔라초 루스폴리, 필라델피아 미술관, 프린스턴 대학교 미술관, 볼티모어 월터스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 부다페스트 미술관 등이 있다.

작품

각주

  1. "PINTURICCHIO." Benezit Dictionary of Artists. Oxford Art Online. Oxford University Press. Web. 14 February 2017. http://www.oxfordartonline.com/subscriber/article/benezit/B00142364 .
  2. Phillipps, cit., pag. 59.
  3. Federici (2003), cit., pp. 344-45, 350.
  4. "PINTURICCHIO." Benezit Dictionary of Artists. Oxford Art Online. Oxford University Press. Web. 14 February 2017. http://www.oxfordartonline.com/subscriber/article/benezit/B00142364 .

출처

  • 본 문서에는 현재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11판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Pinturicchio〉. 《가톨릭 백과사전12. 뉴욕: 로버트 애플턴 사. 1911. 
  • Scarpellini, Pietro; Maria Rita Silvestrelli (2004). 《Pintoricchio》. Federico Motta Editore. 
  • Fabrizio Federici, La diffusione della “prattica romana”: il cardinale Alderano Cybo e le chiese di Massa (1640-1700), in: Atti e Memorie della Deputazione di Storia Patria per le antiche Provincie Modenesi, s. XI - v. XXV, 2003, pp. 315–389.
  • Evelyn March Phillips, Pintoricchio, George Bell & Sons, London, 1901.

외부 링크

  • 위키미디어 공용에 핀투리키오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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