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류 (항공모함)
소류(蒼龍, 일본어: 蒼龍)일본 제국 해군의는 1930년대 중반에 일본 제국 해군을 위해 건조된 항공모함이다 자매함 히류는 원래 소류의 뒤를 잇도록 계획되었으나, 설계가 크게 변경되어 흔히 별도의 함급으로 간주된다.[1] 소류의 함재기는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에서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1940년 중반에는 일본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을 지원했다.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몇 달 동안 소류는 진주만 공격과 웨이크섬 전투에 참가했으며, 네덜란드령 동인도 전역을 지원했다. 1942년 2월에는 함재기를 동원해 호주 다윈을 공습했고, 이어 네덜란드령 동인도 작전에 계속 투입되었다. 4월에는 인도양 공습에서 소류의 함재기들이 영국 중순양함 두 척과 여러 상선을 격침시키는 데 기여했다. 간단한 보수 후, 소류는 1942년 6월 제1항공함대 소속 다른 세 척의 항공모함과 함께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했다. 미드웨이 환초의 미군을 폭격한 뒤, 일본 항모들은 섬에서 출격한 항공기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넷, 요크타운에서 출격한 항공기의 공격을 받았다. 요크타운에서 날아온 급강하폭격기들이 소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불길에 휩싸이게 했다. 일본 구축함들이 생존자들을 구조했지만, 소류는 더 이상 인양할 수 없었고, 동행한 구축함들을 추가 작전에 투입하기 위해 자침 명령을 받았다. 결국 승조원 1,100명 중 장교와 수병 711명이 전사한 채 침몰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소류를 비롯한 일본 항공모함 네 척을 잃은 것은 일본에 결정적인 전략적 패배였으며, 태평양에서 연합국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개요소류는 일본 제국 해군의 1931–32년 보충 계획에 따라 건조가 승인된 두 척의 대형 항공모함 중 하나였으며, 다른 한 척은 자매함인 히류였다. 초기에 순양전함이나 전함 선체를 개조해 만든 아카기와 가가 같은 일본 항공모함들과 달리, 소류는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되었으며, 경항공모함 류조에서 얻은 운용 경험과 교훈이 반영되었다.[2] 처음엔 항공순양함 형태로 설계되어 기준 배수량을 10,000톤 가까운 선체에 20.3cm 연장포탑, 3연장포탑 1기 5문에 12.7cm연장고각포 10기 20문이라는 중무장과 고속력을 군령부에서 요구했다. 이는 기본설계번호 G8안이라고 불리는데, 이 안이 채용되지 못한 것은 기공 직전에 발생한 토모즈루 사건[3]의 영향을 받아 복원 성능 부족을 이유로 채용되지 않았다. 또 소류의 동형함으로서 히류(飛龍)가 설계되었지만 히류가 준공될 때에는 워싱턴 군축조약 및 런던군축조약의 효력이 없어졌다고 판단해 그것을 고려해 소류의 설계를 고친 결과 훗날 일본해군의 정규항모 형태가 확립된 것이다. 소류가 준공될 쯤엔 일본군의 항모운용법이 확립되어 소류는 제2함대의 기동항공부대에 배속되어 함상 경폭격기(훗날 함상 폭격기)를 가지고 적 항공모함을 무력화시키고 제공권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소류의 각 목표는 임무 중 미국 순양함과의 조우전을 고려해 결정되었다. 함교는 우현 전방부에 있으며 우현 중간에 하향식 배출연통이 설치되었다. 엘리베이터는 3대로 후방 엘리베이터 옆에 끌이용 크레인이 있어 카가나 류조에서 보이는 격납고 후부의 도어는 폐지되었다. 패전요인이 된 대미지 컨트롤의 저하를 제외하고는 중형항모로서의 성능은 괜찮아서 15만 마력의 기관을 탑재한 소류의 최대속력은 34.9kt를 기록해 일본해군의 정규항모 중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함이었다. 또 이전엔 비행갑판 후부에 개함식별용으로서 <サ>라는 문자가 쓰여져 있었지만 최근엔 기입이 없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근거로는 <그런 문자는 없었다>라는 수병의 증언과 미드웨이 작전시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원래 동형함인 히류엔 <ヒ>의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표식이라 안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출처 필요] 함선의 전체 길이는 227.5m, 폭은 21.3m, 흘수는 7.6m였다. 표준 배수량은 16,200톤, 정상 배수량은 19,100톤이었다. 승조원은 장교와 수병을 합쳐 1,100명이었다.[4] 장비소류는 8개의 해군함정본부 수관보일러에서 공급되는 증기를 이용해 각각 하나의 구동축을 구동하는 4개의 감속 증기 터빈 세트를 장착했으며, 총 출력은 152,000축마력(113,000kW)이었다.[4] 터빈과 보일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과 동일한 것이었으며, 소류의 출력과 길이 대비 폭 비율이 10:1인 날렵한 순양함형 선체 덕분에 최대 속력 34.5노트(63.9km/h; 39.7mph)[5]를 발휘할 수 있었고, 취역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항공모함이었다.[6] 소류는 3,730톤의 연료유를 탑재했으며, 이를 이용해 18노트 속력으로 7,750해리를 항해할 수 있었다.[4] 보일러 배기구는 선체 중앙부 우현 쪽으로 하나로 모아져, 두 개의 선박용 굴뚝을 통해 비행갑판 바로 아래에서 아래로 굽혀 배출되었다.[7] 비행갑판과 격납고항공모함의 비행갑판 길이는 216.9m, 폭은 26m였으며, 양쪽 끝에서 상부 구조물을 넘어 연장되어 기둥 한 쌍으로 지지되었다.[7] 소류의 아일랜드(항공모함의 비행갑판 위로 돌출된 상부 구조물)는 우현 쪽으로 돌출된 선체 확장부 위에 건설되어 비행갑판 폭을 침범하지 않았다. 비행갑판에는 9개의 횡방향 착륙 어레스팅 기어가 설치되어 6,000kg급 항공기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 비행갑판은 흘수선 위 12.8m 높이에 불과했으며, 설계자들은 격납고의 높이를 줄여 이 거리를 낮게 유지했다.[8] 상부 격납고는 171.3m × 18.3m 크기에 높이 약 4.6m였고, 하부 격납고는 142.3m × 18.3m 크기에 높이 약 4.3m였다. 두 격납고를 합하면 총 면적은 약 5,736㎡였다.[7] 이로 인해 항공기 취급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97식 "케이트" 함상뇌격기 의 경우 상부 격납고에서는 날개를 펼치거나 접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9] 항공기는 세 개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격납고와 비행갑판 사이를 이동했다. 전방 엘리베이터는 아일랜드 옆 중심선에 위치했고, 나머지 두 개는 우현으로 치우쳐 설치되었다.[10] 전방 엘리베이터의 크기는 16m × 11.5m, 중앙 엘리베이터는 11.5m × 12m, 후방 엘리베이터는 11.8m × 10m였다.[7] 각 엘리베이터는 최대 5,000kg까지의 항공기를 운반할 수 있었다.[8] 소류는 예정된 항공기 63대와 예비 9대를 운용하기 위해 570,000리터의 항공용 휘발유를 탑재할 수 있었다.[10] 무장소류의 주력 대공 무장은 50구경 12.7cm 89식 대공·대수상 겸용포가 장착된 6개의 2연장 포탑으로 구성되었으며, 선체 양쪽으로 각각 3개씩 돌출형 스폰슨에 배치되었다.[9] 이 포들은 사거리가 14,700m, 최대 사격 고도가 +90도 상승각에서 9,440m였다. 최대 연사력은 분당 14발이었으나, 지속 연사력은 약 분당 8발 정도였다.[11] 함선에는 12.7cm(5.0인치) 포를 조종하기 위한 94식 사격 통제 장치 두 대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각 장치는 선체 양쪽을 담당했다.[12] 다만 아일랜드 우현의 지휘장치는 모든 89식 포를 제어할 수 있었다.[9] 함선의 경(輕) 대공 무장은 라이선스 생산된 호치키스 25mm 96식 대공포 2연장 포탑 14개로 구성되었다. 이 중 세 개는 비행갑판 전방 바로 아래 플랫폼에 설치되었다.[9] 이 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표준 경대공 무기였지만, 심각한 설계 결함으로 인해 사실상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역사학자 마크 스틸(Mark Stille)에 따르면, 이 무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인력이나 동력으로 포를 충분히 빠르게 조준·승강할 수 없어 고속 목표를 대응할 수 없고, 조준기가 고속 목표에 부적합하며, 과도한 진동과 포구화염이 발생한다”는 점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13] 이 포들의 유효 사거리는 1,500~3000m였으며, +85도 상승각에서 최대 사격 고도는 5,500m였다. 15발 장탄창을 자주 교체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 유효 연사력은 분당 110~120발에 불과했다.[14] 96식 포는 95식 사격 통제 장치 5대로 제어되었으며, 양쪽에 각각 2개, 선수 쪽에 1개가 배치되었다.[12] 장갑무게를 줄이기 위해 소류는 최소한의 장갑만 갖췄다. 수선 벨트는 듀콜 강철 41mm로 제작되어 기관실과 탄약고만 보호했다. 이에 비해 히류는 기관실과 항공유 저장 탱크 위는 90mm, 탄약고 위는 150mm로 장갑이 두꺼웠다. 소류의 수선장갑대 뒤에는 내부 파편 방지 격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갑판 두께는 기관실 위가 25mm, 탄약고와 항공유 저장 탱크 위가 55mm에 불과했다.[8]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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